생태계와 파트너십이 탄생시킨 플랫폼 협동조합:
에바, 널시즈캔, 업앤고
일반적으로 협동조합의 가장 큰 특징은 ‘자조(self-help)’, 즉 당사자들이 스스로 일어서기 위해 만든다는 점이다. 그러나 플랫폼 협동조합의 경우 꼭 그렇지만은 않다. 디지털 플랫폼의 개발에는 적지 않은 비용과 전문성이 필요한데, 당사자들이 이러한 조건을 모두 갖추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플랫폼 협동조합들은 당사자 외의 개인이나 단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설립되었다. 승차공유 플랫폼 에바(Eva), 간호사 협동조합 널시즈캔(NursesCan), 그리고 가사서비스 플랫폼 업앤고(Up & Go)의 사례를 살펴보자.
승차공유 플랫폼 에바: 청년 혁신가와 퀘벡 사회연대경제 생태계의 만남
에바는 택시업계를 뒤흔들며 운전기사의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확산시키는 우버(Uber)의 대안으로서 2017년 12월 13일 설립되었다. 2019년 5월 몬트리올을 시작으로 2020년 8월 퀘벡시티(Quebec City), 10월 사그네(Saguenay)에서 서비스를 출시했다. 에바 글로벌(Eva Global)이 플랫폼 관리와 마케팅을 맡고, 에바 몬트리올 등 가맹 협동조합이 지역별 사업을 운영하는 ‘소셜 프랜차이즈 협동조합’ 모델을 가지고 있다. 수수료는 우버, 리프트(Lyft)에 비해 10% 저렴하고, 운전기사와 승객이 모두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다중이해당사자 협동조합이다(https://fr.wikipedia.org/wiki/Eva_(coop%C3%A9rative).
현재는 수많은 운전기사가 조합원으로 함께하고 있지만, 에바의 시작은 두 명의 청년 혁신가들이었다. 우버의 영업허가 여부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던 2014년, 당시 대학을 막 졸업한 다단 이수피(Dardan Isufi)와 개발자로 일하던 라파엘(Raphael Gaudreault)은 처음 우버의 대안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이들은 “플랫폼 협동조합의 경우 조합원보다 제품이 먼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한다.
《라이프인》, 로컬 모빌리티 협동조합 글로벌 연합체를 꿈꾸는 소셜 벤처 '에바(EVA)'〉, 2020. 2. 7. | |
《라이프인》, 플랫폼 협동조합, 한국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상상하다, 2020. 5. 23. 원문보기 |
에바는 창업 준비단계와 사업 초기단계에서 퀘벡 지역에 잘 자리잡은 사회연대경제 생태계의 지원을 받았다. 1차 자본조달에서 70만 캐나다달러(한화 약 6억원)를 확보했는데, 여기에는 퀘벡지방투자공사(IQ), 퀘벡사회투자네트워크(RISQ), 데자르뎅신용협동조합, 창업지원기관 ‘PME 몬트리올’, 투자회사 ‘프로지테크(Progitech)’ 등이 참여했다. 나중에 살펴볼 프랑스의 배달 플랫폼 쿱사이클(CoopCycle)이나 한국의 라이프매직케어협동조합과 비교할 때 이는 대단히 유리한 조건이다. 특히 한국은 지방정부나 중간지원조직의 지원금 규모가 작고 여러 조건이 붙은 경우가 많은데다, 사회적 금융의 규모가 작아 에바처럼 주류 플랫폼 기업과 바로 경쟁할 만큼 지원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물론 에바 역시 “플랫폼 협동조합에 왜 막대한 초기 투자가 필요한지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말한다. 물론 이러한 사례가 나타날수록 설득은 조금씩 쉬워질 것이다.
자본조달 외의 지원도 이루어졌다. 퀘벡협동조합/공제조합연합회(CQCM), PME 몬트리올, 퀘벡지역개발협동 조합(CDRQ)은 경영 컨설팅을 제공하고 에바의 조직 안정화를 도왔다. 샹티에(Chantier), 시티즈(CITIES)는 에바가 우버와 마찬가지로 시범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정부 관련부처와 연결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도움을 주었다. 다단 이수피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이러한 형태의 지원도 자본조달만큼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기초적인 지원만으로도 성장하고 있는 쿱사이클에 만약 이러한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높이는 주류화 전략도 가능할지 모른다. 한국의 경우 지방정부, 중간지원조직, 사회연대경제 컨설턴트들이 이러한 지원을 제공할 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플랫폼 협동조합의 성공사례를 만들기 위해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널시즈캔(NursesCan):
간호사들과 보건의료노조의 파트너십
미국의 간호사 협동조합 널시즈캔은 ‘직업간호사(Licensed Vocational Nurse)’들이 의료기관에 온디맨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협동조합이다. 간호사들은 평소 의료기관에서 활용하지 못하는 능력을 발휘하면서 추가 소득을 창출하고, 병원은 적은 비용으로 의료서비스의 공백을 메울 수 있다. 환자들은 가정방문 서비스 등을 통해 건강을 관리할 수 있어 모두에게 만족도가 높다(미국의 직업간호사는 ‘등록간호사(Registered Nurse)’에 비해 짧은 교육과정을 이수한 의료인으로, 상대적으로 제한된 범위의 업무를 수행한다).
직업간호사 5명으로 시작한 널시즈캔의 설립과 성장에는 캘리포니아 중심의 산별노조 ‘서부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United Healthcare Workers West)’이 깊이 관여했다. 사업개발 전문가를 고용해 경영 및 법률적 역량을 제공했고, 고객이 될 수 있는 여러 의료기관을 소개했다. 널시즈캔이 처음으로 계약을 맺고 시범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병원에서는 보조금과 선입금으로 초기 운영비용을 지원했다.
간호사들이 노조와 손잡고 보건의료 플랫폼 협동조합을 출범시키다(Nurses Join Forces With Labor Union to Launch Healthcare Platform Cooperative), 2017. 8. 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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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노조는 왜 간호사 협동조합 설립을 지원했을까? 라 크리시티엘로(Ra Criscitiello) 보건의료노조 연구원은 널시즈캔을 통해 미조직 상태의 파트타임, 저임금 간호사들을 조직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의료기관의 간호인력 활용 방식이 최근 빠르게 변화하면서 전통적인 방식의 노조활동만으로는 기존 노조원들의 권리를 지키기도 점차 힘들어지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3년마다 단체협상에 나서면 사용자들은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고, 그때마다 우리는 깨진다. 새로운 전략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나중에 살펴볼 쿱사이클의 창립자 알렉상드르 세구라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프랑스의] 노동조합은 임금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지키는 일에 주력하지 임시직 경제의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한국의 노동조합운동도 이러한 평가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플랫폼 노동과 임시직 활용이 계속 증가한다면 양질의 일자리가 점차 사라지는 것은 물론 남아 있는 일자리의 노동조건도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크리시티엘로 연구원의 말은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희망적인 소식도 있다. 최근 민주노총 산하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은 ‘봉제인공제회’를 출범시켰고,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은 봉제인공제회의 초기 사업자금으로 5억원을 융자하기로 결정했다(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https://www.svsfund.org/notice/113, 2020. 7. 13). 또한 더욱 폭넓은 ‘노동공제회’ 설립을 통해 노동자들이 직접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하려는 움직임도 진행 중이다. 앞으로 노동조합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시장 속의 대안을 직접 육성하는 더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기를 기대해 본다.
업앤고:
가사노동자, 지역 NGO, IT 노동자협동조합, 상업은행의 파트너십
미국 뉴욕시의 업앤고(Up & Go)는 대부분 이주노동자로 구성된 가사노동자 협동조합 세 곳이 함께하는 플랫폼 협동조합이다. ‘핸디(Handy)’ 등의 대규모 플랫폼이 가사노동자로부터 20~50%의 높은 수수료를 받고 ‘지각비’, ‘취소비’ 등을 물리는 것에 반해 업앤고는 수수료가 5%에 불과하며, 가사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한다. 덕분에 업앤고에서 일하는 가사노동자들은 뉴욕시-뉴저지 도시지역의 가사노동자 평균 시급 17.27달러에 비해 4~5달러 높은 22.25달러를 번다(미 연방 노동통계청).
《GlobeNewswire》, 가사서비스 플랫폼 업앤고, 노동자를 중심에 세워 임시직 경제를 뒤흔들다(New Home Services Platform Up & Go Shakes up the Gig Economy by Putting Workers in Charge), | |
업앤고 역시 가사노동자 당사자 외에도 여러 단체가 힘을 모아 탄생시켰다. 가사노동자 조직화는 브루클린 선셋파크(Sunset Park) 지역에서 1978년부터 활동해온 주민지원단체 CFL(Center for Family Life)이 주도했다. 자본조달은 뉴욕시 최대의 빈곤퇴치단체 로빈후드재단(Robin Hood Foundation)과 상업은행 바클레이스(Barclays)의 사회공헌기금에 의해 이루어졌다. 플랫폼 개발은 IT 노동자협동조합 코랩(CoLab)이 맡았다.
《이로운넷》, [SE-전문가의 눈] 한국에서 플랫폼 협동조합이 등장할 수 있을까?, 2019. 5. 15. | |
지역에서 주민을 위한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빈곤퇴치 운동을 벌이는 단체가 플랫폼 협동조합 설립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로빈후드재단의 소득보장사업 책임자 스티븐 리(Steven Lee)는 이렇게 설명한다. “’온디맨드’ 경제에서 가장 주변화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가 가장 돕고자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 그래서 IT 플랫폼을 만들어 뉴욕시의 저소득층과 소비자를 연결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바클레이스 은행이 사회공헌기금을 활용한 방식 역시 흔히 형식적 기부로 그치는 많은 CSR 사업과 대비되는 혁신적 사례다. 마크 테인(Mark Thain) 이사는 이렇게 말한다. “CFL, 로빈후드재단, 바클레이스 은행의 독특한 파트너십은 민간부문과 비영리 부문이 힘을 합쳐 더욱 많은 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임시직 경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훌륭한 사례다.”
플랫폼 개발을 IT 노동자협동조합이 맡았다는 점도 업앤고의 성공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권오현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이사장은 필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단순히 지원금을 받아 외주를 맡긴다고 해서 좋은 플랫폼이 개발되는 것이 아니다. 기술적 전문성과 사업 경험, 경영 전문성이 조화될 수 있는 협력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서는 ‘우렁각시’ 플랫폼을 출시했지만 활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라이프매직케어협동조합의 사례에서 추후 다시 살펴보도록 하자.
업앤고 설립과정에 처음부터 함께한 가사노동자 시레니아 도밍게즈(Cirenia Dominguez)는 협동조합으로 사업을 하면서 “자신을 전문 클리너일 뿐만 아니라 회계사, 마케팅 전략가, 사업가로 인식하게 되었다. … 언젠가는 다른 지역의 협동조합 설립을 돕고 싶다”고 말한다. 플랫폼 경제가 등장하면서 오히려 과거보다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사노동자들에게 플랫폼 협동조합 설립은 최고의 임파워먼트(empowerment) 전략 중 하나일 것이다.
세계 여성의 날, 이민자들을 위한 훌륭한 비즈니스 모델을 축하하며 〈Celebrating a great business model for immigrants on International Women’s Day〉, 2018. 3. 8. - 시레니아 도밍게즈 / 브라이틀리 클리닝(Brightly Cleaning) 협동조합 창립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