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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로 듣는 협동조합의 역사 ④ ]

가장 정치적인 제빵 협동조합

-벨기에의 보뤠트Vooruit(앞으로)!



협동조합 선구자들의 반열에는 끼지 않지만 1880년 말에 설립된 벨기에의 빵집협동조합 보뤠트(앞으로!)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역사이다. 왜냐하면 이 협동조합을 만든 동기와 목적이 많은 논쟁거리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협동조합을 만든 이들은 독일의 슐체-델리치와 이탈리아의 루짜티가 그토록 적대시했던, 당시 국제 노동자 조직인 인터내셔널의 벨기에 겐트Ghent시 지부 소속의 사회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성공적인 사업으로 사회주의 이념과 협동조합의 결합에 성공한 보기 드문 사례로 이후 벨기에 협동조합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분열과 갈등으로 인한 결별, 그리고 새출발


보뤠트의 설립은 1880년 말이지만 전사가 있다. 애초에는 1873년에 방직공 출신의 노동자들과 몇 명의 장인들이 함께 ‘자유제빵사Vrije Bakkers’라는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가난한 노동자들이었던 그들은 출자금을 모으기 위해 매주 50상팀씩 저축했고, 10주간 각자 5프랑씩 모아 총 150프랑이라는 소액의 종자돈으로 시작했다. 설립과 동시에 인터내셔널 겐트 지부를 복구했고 빵집이 있는 건물 안에 지부 사무실을 두었다. 게다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모여서 협동조합의 운영에 대해 회의를 하고 나서도 노동계층의 공익에 대한 토론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성실히 일한 결과 이듬해 상반기에는 수익이 제로였지만 하반기에는 빵 한 개당 6상팀의 수익을 남겼다.

 

이들 또한 공정개척자들처럼 당시에 상점의 운영을 위태롭게 했던 외상 구입을 금지하고 현금 거래만 했으며, 조합원들의 경우 1주일 전 선불제를 실시하여 자금의 안정성을 도모했다. 그리하여 여러 해 동안 협동조합은 꾸준히 성장했다. 하지만 조합 내 열성 사회주의자들은 협동조합에 대한 선전보다는 사회주의 선전에 더 열을 올렸다. 그 결과 조합은 단순 협동조합 조합원들과 사회주의 우선주의자들로 분열되었다. 대의원들 사이에서는 사회주의운동에는 반대했지만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고, 급기야 이사회와 총회에서 폭발하여 싸움이 벌어졌다. 하지만 사회주의자들이 돌아가는 판세를 보니 자신들이 주도권을 잡지 못할 듯 보여 집단적으로 탈퇴하고 그들만의 새로운 협동조합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이제 보뤠트의 역사가 시작된다.


 



앞으로 앞으로!


탈퇴한 조합원들은 사회주의자들의 협동조합을 천명하며 빵집을 열었다. 부족한 자본금은 당시 사회주의운동을 주도했던 방직공노동조합이 2,000프랑을 빌려주었다. 수익금의 일부는 사회주의 선전에 쓰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싼값에 노동자들에게 빵을 파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사회주의자들을 양성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업은 대성공이었고 설립 후 조합원은 계속 늘어나 1년 만에 빚을 다 갚았다. 반면 이전 자유제빵사들의 협동조합은 기운이 빠져 해산했다. 사실 탈퇴한 조합원들은 겐트시에서 가장 똑똑하고 유능하며, 헌신적이고 과감한 노동자들이었으며, 노동해방을 향한 믿음과 열정이 대단했다.

  

사업은 확장을 거듭하여 1883년에는 시내 중심가에 있는 낡은 공장을 인수하여 제대로 시설을 갖춘 큰 빵집과 까페와 모임 공간이 있는 복합매장을 열었다. 보뤠트는 체계적인 운영과 경제적인 생산으로 이익이 급상승하여 반기별 이익을 배당했고, 그때마다 큰 축제를 열었다. 그리고 서민 밀집지역에 유인물을 뿌리며 자신들의 성과를 홍보하면서 참여를 독려했다.




1884년에는 폐공장부지에 신규 빵가게와 까페, 모임방뿐 아니라 극장과 조합 공간 및 사무실, 가게 등을 포함한 건물을 세웠다. 이때는 겐트시의 여러 노동자 단체들 전체가 참여하여 축하해주었다. 이렇게 대대적으로 개소식을 치른 까닭은 그 동안 협동조합을 탄압하고 깔보던 사회주의운동에게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서이다. 보뤠트는 협동조합을 통해노동자들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며 생활조건을 향상할 뿐 아니라 사회주의자 교육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 결과 매주 12명의 신규조합원이 가입했고, 이전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며 한걸음 물러나 있던 노장의 사회주의자들도 조합원으로 가입하여 보뤠트는 그야말로 켄트시 사회주의자들의 집결지가 되었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보뤠트 사례는 벨기에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 칼럼은 착한책가게의 <처음 만나는 협동조합의 역사>에서 본문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글 : 김신양

한국사회적경제연구회에서 회장을 맡아 먹거리, 서로돌봄, 생태적 에너지, 주민 참여를 통한 지역개발 등과 관련한 실천 활동을 지원하고, 정책을 만들기 위해 돈 안 되는 활동을 하고 있다. 3년간 ‘다른경제 학습동아리’를 운영했고, 최근에는 주로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나 생활협동조합 또는 지역의 소박한 모임의 학습을 지원하며 함께 배우고 익히고 성찰하는 일, 배우고 익힌 것을 책으로 쓰는 일, 현장에서 필요한 연구과제를 하는 일을 한다.

지은 책으로 《마을에서 함께 읽는 지역관리기업 이야기》 《깊은 협동을 위한 작은 안내서》 《한국 사회적경제의 역사》(공저) 《의료복지 2026 주치의가 답이다》(공저) 《프랑스의 실업자 운동》 등이 있다. 《지역관리기업, 사회관계를 엮다》 《다른 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을 공동으로 번역했고, 《다른경제》를 편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