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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관계 #순환 #지역 #지역활동
지방 소멸의 우려와 다르게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소멸되고 있는 지역에 관심을 보이고 도시재생, 청년 지역정착사업 등의 정책사업으로 정부의 지원이 쏟아지고 있는 것을 보면 소멸되고 있는 지역이 되살아나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기후재난과 불평등이라는 일상의 위기를 만들어낸 근대문명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개발과 경쟁, 소유와 소비를 대신할 수 있는 대안으로 모두가 지역을 강조하고 있다. 이제서야, 생명과 비 생명 가릴 것 없이 누군가의 것을 빼앗고 채워질 수 없는 탐욕으로 존재하는 자본주의, 그리고 자본주의를 앞에 내세운 근대 문명의 맨얼굴을 보고 있다. 결국 미래를 살아가려면 근대문명에서 벗어나 떠나온 그곳 지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경계를 무너트리고 균형을 깨트리며 치달리는 근대문명에 대안은 순환과 균형을 지키는 지역일 수밖에 없다.
지금 여기에서 지역은 문제이자 희망이다. 문제가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도대체 문제가 무엇인지?’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지?’ 통찰하고 공감하는 진단부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상상을 실천하기 위한 가설이 필요하다.
지역으로부터의 위기와 희망의 가설은 누가(who), 어떻게(how), 무엇(what)을 할 수 있는지의 주체 활동과 지역 안팎에서 작동하는 자연 및 사회환경의 위해요인들을 이어가면서, 행정이 아닌 주민들 스스로가 개인의 삶과 사회문화를 전환하는 새로운 이야기이다. 그래서 알고 있는 많은 지식과 습관처럼 익숙한 방법으로는 위기와 희망의 가설을 쓸 수가 없다. 새로운 발명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발명이 갑자기 나타나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꿔버리는 것을 뜻하고 바라는 것은 아니다. 똑같아야만 된다는 세상을 이제 나로부터 다르게 보고 어제의 것이 오늘은 달라지고, 너머로 가는 생활의 흐름일 뿐이다.
그래서 지역의 발명은 행정과 전문가가 아닌 주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 돌보며, 더불어 살아가는 생활에 필요한 문화와 경제가 순환되는 지역 생태계를 새롭게 회복하는 일이다. 조금 더 욕심을 내면 무엇을 하든 늘 위태롭고 불안한 생활에서 해방되는 일이다.
지역의 발명으로 이름 붙인 가설로 어렵지 않게 다시 지역의 발명의 필요성을 실감하기를 바란다.
주민이나 지역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지역을 회복하는 것이 마치 예전 그대로의 지역의 모습을 지키는 것이라는 착각이 있다. 살아가는 지역이 박제화 되지 않는 이상 이럴 수는 없다. 지역도 자연환경 및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키려고 하는 지역은 고착화되거나 폐쇄되지 않고 지역성 안에서 개방되고 진화되어야 한다. 지역에서 다양한 세대를 만나보면 공동체의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다. 기성세대의 공동체성이 모두가 같아야 하고, 규범에 따라야 하고, 의무적으로 공공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미덕으로 알았다면 청년세대의 공동체성은 자아활동의 연장선으로 공동체를 만나고 느슨하게 연결되면서 공감할 수 정도에서 만들어진다. 집단공동체에 묶일 필요도 없고 묶이지도 않는다.
지역의 발명은 청년세대의 공동체성에 가깝다. 개개인의 다른 성향을 인정하고 다른 개인들이 만나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일들을 즐기며 살아가는 곳을 만드는 일이다. 집단의 지배에서 벗어나 공감과 지지로 더불어 살아가는 네트워크개인주의에 따른 방법이다.
아직까지 지역사업 정책과 지원은 관리하고 쉽고 짧은 시간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사업, 공동시설을 짓거나 마을을 보수하는 등의 하드웨어 사업에 집중되어 있다. 오히려 지역을 매력적으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재생할 수 있는 컨텐츠 지원은 제한적이다. 도시재생이나 주민자치 등이 주민 주도를 강조하면서 주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몇몇 주민이 모든 사업에 대표성을 가지고, 주민들의 참여는 보이지 않는다. 지역사업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주도성과 돌봄 관계는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지역의 발명은 합리적으로 제한된 시간과 예산안에서 행정과 전문가가 성공한 사례를 벤치마킹해서 빠르게 기획하고 집행하는 방식이 아니라 여유를 가지고 자기 안에 다양한 삶의 경험과 욕망을 가진 주민들이 갈등과 실패를 받아들이며 살고 싶은 지역을 스스로 발명하고 실천하는 일이다.
지역은 아직도 수도권의 상대적 개념으로 이해되고 수도권에 종속된, 중심에 집중된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심에 집중된 문화가 빼앗아 간 것이 다양성과 독립성이고 가지고 온 것이 인간중심의 기후재난과 승자 중심의 불평등이다. 문제는 문제를 만든 원인을 해결할 때 풀린다. 6번째 대 멸종의 위기를 해결하려면 중심에 집중된 문화를 해체하고 다양한 지역에서 지역마다 가진 독특한 문화를 지키며 순환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계획해야 한다. 생태적으로는 비인간의 삶의 방식까지도 존중하는 일이다.
지역의 발명은 차이의 특이성이 매력이 될 수 있도록 해서 호혜적인 관계를 만들어가게 하는 방법이다. 이럴 때 중심에 집중된 문화에
서 벗어나 차이가 만들어내는 다양성과 독립이 만들어내는 경계성으로 순환되는 지역이 위기의 시대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처음 글을 기획할 때 관계를 기획하는 브랜딩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주민 스스로 오랫동안 지역 안에 축적된 다양한 자산을 가지고 지역을 새롭게 발명하고 실천해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사람들이 느끼는 지역의 정의와 지역이 가진 역할, 지역답게 하는 활동들과 함께 지역을 발명하는 방법들, 지역을 발명하고 있는 사례들을 소개하고 싶었다.
글을 쓰면서는 지역이라는 이름 대신에 로컬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더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의견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로컬이라는 이름이 왠지 내키지 않았다. 생각으로는 로컬이라는 이름에서 주민보다는 외부 전문가가 보였고 관계보다는 벤처 비즈니스 같았기 때문이다.
지역은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야만 모델이 될 수 있다. 그 방식은 지역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이 모여 고민하고 결정하면 된다.
이 글은 2022년 발행예정인 책 『지역의 발명(가제)』(착한책가게)에 대한 출간 전 연재 시리즈입니다.
글 : 이무열
관계로 우주의 풍요로움을 꿈꾸는 ‘마케팅커뮤니케이션협동조합 살림’에서 기울지 않은 정상적인 마케팅으로 이런저런 복잡한 관계를 설계하고 실천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전환의 시대, 마케팅을 혁신하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