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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는 ‘사회적 경제’를 경제의 문제로만 생각하곤 한다. 이렇게 생각해 온 사람이라면 지역과 사회적 경제가 별개의 문제로 와 닿지 않을 것이다. 사회를 부문별로 나누고 제한하는 분리화의 관성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회문제뿐 아니라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이 일, 교육, 돌봄, 인권, 기후 등의 칸막이로 나뉘어져 있다. 하지만 지역과 사회적 경제는 넓은 대안체계 안에서 통합되어 있고 서로의 필요에 따라 서로 맞물려 작동한다. 이때 지역은 사회적 경제를 양성하고, 사회적 경제는 지역을 지지하는 관계에 있다. 이를 ‘지역으로서의 사회적 경제’ 또는 ‘사회적 경제로서의 지역’ 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경제는 지역을 회복하는 사업이자 동시에 시민의 생활을 조절하는 경제활동이다. 여기서 경제활동은 자치와 자립, 차별과 연대, 시민 행복권과도 통합된다. 지역통합을 위해서 사회적 경제가 가져야 할 방안은, ‘마르크 하쯔벨트’가 정리한 ‘지역관리기업’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사회적 경제가 지역의 회복과 통합을 위해서 첫 번째로 할 일은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과 협력하고 이를 통해 연대와 호혜를 실천하는 것이다. 두 번째 특정한 사회관계만의 문제로 접근하지 않고 정신과 물질의 관점에서 직업, 정치, 교육 등을 모두 함께 통합해야 한다. 세 번째 지역의 사회적 경제는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가진 사업체로서 존재해야 한다. 어떤 이유에서건 일정한 수준의 성장을 넘어서 규범화해서는 안 된다. 연대와 호혜, 통합적 사고와 실천을 통해 사회적 경제는 지역과 함께 할 수 있다.
국내 사회적 경제의 사명은 “일자리, 불평등, 돌봄, 취약계층지원 등의 ‘사회문제 해결’과 함께 ‘지역공동체의 기여’”로 정의된다. 그렇지만 이 사명에는 보이지 않는 함정이 있다. 서로 나누기 어려운 두 목적을 분리시켜서 사회적 경제를 임노동의 경제활동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사회적 경제 기업가들은 혼란스러워지고 결국 지역공동체는 생산과 소비가 함께 이루어지는 경제공동체가 아닌, 경제활동의 결과물로 전락하거나 이를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다. 일관성도 없고, 우선순위도 없는, 뒤죽박죽으로 발생되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경제학의 일부 이론가들은 ‘쓰레기통 경영’이라고 부른다. 세부적으로 목적을 맞추고 각각 상황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 겉보기에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오히려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계속해서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문제 해결’과 ‘지역공동체 기여’는 통합적으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이것이 뒷받침되어야 사회적 경제는 고립되지 않고 지역에서의 경제활동을 정체성으로 삼을 수 있다. 또한 실용성을 특징으로 하는 기업적 방식으로 일, 돌봄, 주거, 청년, 기후위기 등의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지역의 여러 조직들과 다층적으로 연대할 수 있다.
캐나다의 퀘벡, 이탈리아의 볼로냐, 스페인의 바로셀로나, 한국의 원주처럼 지역명으로 사회적 경제를 설명하는 이유는 협동조합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지역적 연대를 기반으로 성공적인 사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역과의 연대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사회적기업가는 규모화의 유혹에 빠져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결국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영리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게 된다. 지난해, 대표적인 협동조합의 성공사례로 소개되던 캐나다 MEC(Mountain Equipment Coop) 역시 이 두 가지 함정에 빠져 미국 자본에 의해 시설이 매각됐다.
이처럼 위험한 상황은 국내 사회적 경제에서도 예상된다. 2019년 자료를 보면 서울시 마포구에서는 323개의 사회적 경제기업이 활동하고 있다. 조직성격상 마을기업과 자활기업을 모두 포함하더라도 기업들의 사업내용을 살펴보았을 때, 약 30% 정도만이 지역과 관련이 있는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사회적 경제를 넘어 주민생활을 위한 지역연대활동 역시 극히 제한적이다. 다른 지역의 상황은 마포구보다 좋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시 강조하지만, 더 늦지 않게 사회적 경제와 지역과의 연대가 이루어져야 지역이 회복되고 사회적 경제의 지속가능한 경영이 가능할 것이다.
지역과 사회적 경제를 통합하기 위해서는 사사키 마사유키 교수의 ‘내발적 발전 모델’과 ‘플랫폼 모델’을 주민 주도로 시도해볼 수 있다. ‘내발적 발전 모델’은 지역공동체의 정체성을 뿌리로 주민들의 자발성과 창조성을 고양시키면서 환경(자연과 사회)과 산업의 조화를 이루고, 지역이 가지고 있는 전통문화와 산업에 첨단기술을 아우르면서 다양한 산업으로의 확장을 계획하는 방식이다. ‘내발적 발전모델’에 따라 주민들의 자율적인 참여로 이루어지는 사회적 경제는 지역의 문제와 필요를 실용적으로 해결할 능력을 토대로 [그림 1]처럼 지역의 다양한 부문 활동을 사회적 경제방식으로 통합하고 사업을 연결할 수 있다. 또 일본 협동조합운동의 경우처럼, 앞으로의 지역생활에 중요한 의제가 되는 먹을거리, 에너지, 돌봄(FEC : FOOD, ENERGY, CARE)에 집중적으로 실천할 수도 있다.
지역을 토대로 하는 ‘사회적 경제 플랫폼 모델’은 주민 개개인의 욕구와 활동에 집중하면서 이것을 사회적 경제 사업(활동)으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지역은 [그림 2]처럼 개인의 욕구와 활동이 사회적 경제와 만나는 허브(Hub) 역할을 한다.
[그림 2]는 이렇게 개인의 욕구가 발생하고 집합되면서 욕구의 성격에 따라 사회적 경제가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해소방안(제품이나 서비스)을 제공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욕구와 해소방안이 바로 지역 내 다양한 사회적 경제 기업들의 사업모델 된다. 이 흐름은 혁신과정과도 같이, 해소방안이 또 다시 주민들의 욕구를 만들어 가면서 사회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는 흐름을 이어간다.
프랑스 사회학자이면서 사회개량운동가인 ‘르 플레(F. Le Play, 1806-1882)’는 ‘공동체는 장소, 사람, 노동의 유기적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인류의 역사를 경제사적으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삶은 경제활동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누구나 실감할 수 있다. 근대산업의 등장과 함께 사람들이 지역을 떠나고 도시의 공장으로 이주하면서 지역의 해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지역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해체되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19 이후에 지역에서의 삶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장애물은 경제활동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경제는 지역의 회복을 위해 ‘가장 큰 역할’을 도맡을 수밖에 없다.
이 글은 2021년 발행예정인 책 『지역의 발명(가제)』(착한책가게)에 대한 출간 전 연재 시리즈입니다.
글 : 이무열
관계로 우주의 풍요로움을 꿈꾸는 ‘마케팅커뮤니케이션협동조합 살림’에서 기울지 않은 정상적인 마케팅으로 이런저런 복잡한 관계를 설계하고 실천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전환의 시대, 마케팅을 혁신하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