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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로 듣는 협동조합의 역사 ② ]

협동조합이 탄생한 시기는 어떤 세상이었을까?


협동조합이 탄생한 시대를 가늠해보자.

유럽의 경우에는 아직 증기기관차의 발명으로 상징되는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전이었지만 인클로저(enclosure)로 인하여 이미 농촌의 공동체가 해체되던 시기였다. 인클로저란 말 그대로 공유지와 초원, 목초지 등에 울타리를 쳐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12세기에 인클로저 운동이 시작되어 1450~1640년에 급속히 진행되었다.

 


‘인클로저’란 공유지나 초원, 목초지 등에 울타리를 쳐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산업혁명 전야, 농촌 공동체가 해체되던 시기

 

그러다 보니 땅을 소유하지 못한 평민들이 소유한 가축이 풀을 뜯어먹을 수도 없게 되었고, 약초나 나물을 캐서 식량을 조달하는 거 또한 불가능하게 되어 먹고 살 길이 막막해졌다. 유럽의 다른 나라와는 달리 영국의 경우 산업혁명 바로 이전에 급속히 인클로저가 이루어졌고, 19세기 말에는 사실상 완료되었다.

가진 것 없는 보통사람들(commoners)은 땅이 곧 식량의 창고나 마찬가지인데, 그 땅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지상의 양식 또한 얻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니 하나 둘 농촌을 떠나 도시로의 이주가 시작되었고, 갑자기 인구가 몰려든 도시는 열악한 주거 공간에 많은 사람들을 쑤셔 넣으며 뭐든 할 준비가 되어 있는 값싼 노동력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계몽주의운동의 시작, 인간의 운명을 개척하는 새로운 정신의 발전

 

다른 한편, 협동조합이 시작될 당시는 봉건시대를 지나 계몽주의운동이 시작될 시점이기도 하다. 협동조합이라는 결사체는 ‘내 팔자려니’ 하며 주어진 운명에 체념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시대건 항상 송곳처럼 뚫고 나오는 사람이 있는 법, 기계문명만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의식도 성장을 한다. 아니 오히려 사람의 의식이 발달했기 때문에 새로운 문명을 탄생시켰을지도 모른다.

 

사실 산업혁명 이전에 인간 정신에 빛을 비추어 그 힘으로 무지몽매한 인간의 의식을 발전시켜 어두운 삶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운동이 있었으니 바로 계몽주의다. 대략 1700년대 초에 시작되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1789년까지 지속된 운동으로 중세의 암흑기를 벗어나고 지식을 전파하고자 하는 지식인의 운동이다. 철학자들과 지식인들은 과학을 장려하고, 미신, 정치와 종교 부문에서의 불관용(不寬容) 및 교회와 국가권력의 남용에 반대했다.

14세기에서 16세기에 문예부흥운동(르네상스, Renaissance)으로 종교개혁이 이루어졌듯이 계몽주의운동은 산업혁명이라는 과학기술의 발달만 촉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운명을 개척하는 새로운 정신도 발전시켰다. 공제조합이나 협동조합과 같은 노동결사체 또한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지오프랭 부인의 살롱에서 볼테르의 비극 ‘중국의 고아’ 낭독> - 샤를 르모니에, 1812년.
출처 
wikimedia File:Salon de Madame Geoffrin.jpg - Wikimedia Commons

 


 

우리나라, 결사체로서의 ‘계’와 백성을 위한 실용적 학문의 대두

 

한국의 역사에서 공제조합과 비슷한 역사를 가지는 것으로 ‘계’가 있다. 그 시작이 언제인지는 분분하나 대부분이 상호부조의 목적을 가지며 민초들의 삶에 깊이 뿌리내린 것으로 조선시대에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의 계는 전통사회의 자발적인 상호부조 모임이나 조직이었기에 구성원 간 평등한 관계에 기초한 결사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계의 전통이 일제강점기 때 탄압을 받아 금지된 것으로 보아 식민시대 동안 계가 민의 자발적인 결사체로 거듭나는 과정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다른 한편, 1750년이면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조선시대의 영조가 왕이었고 그의 손자 정조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이다. 하지만 곧이어 1776년 정조가 즉위한 이후 다산 정약용을 비롯한 학자를 등용하여 성리학이 백성을 살찌우는 실용적인 학문이 되도록 권장하던 시대이기도 했다. 그래서 후세대에 이르러 이러한 경향을 실학이라고 부르고, 정약용과 같은 이들을 실학자들이라고 칭하는 흐름이 있을 정도였다.

 

 

<<목민심서>>1818년, 정약용. 목민관으로 불리는 지방 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指針)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저서이다.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EB%AA%A9%EB%AF%BC%EC%8B%AC%EC%84%9C)

 

 

이렇듯 아직 본격적인 교류가 없던 유럽과 미대륙과 한국이었지만 역사는 어느 정도 동시성을 가진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와 같은 실용적인 학문적 성과는 그가 탄압받던 천주교도였던 배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서구의 평등사상에 영향을 받았기에 당시는 왕조시대였고 산업혁명을 거치지 않았지만 벼슬아치들을 위한 학문이 아닌 백성을 위한 학문을 닦은 것이 아닐까? 당시의 그러한 흐름이 유럽에서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경제가 탄생한 흐름과 연관성이 없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칼럼은 추후 발행될 예정인 <이야기로 듣는 협동조합의 역사>(가제)에서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글 : 김신양

한국사회적경제연구회에서 회장을 맡아 먹거리, 서로돌봄, 생태적 에너지, 주민 참여를 통한 지역개발 등과 관련한 실천 활동을 지원하고, 정책을 만들기 위해 돈 안 되는 활동을 하고 있다. 3년간 ‘다른경제 학습동아리’를 운영했고, 최근에는 주로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나 생활협동조합 또는 지역의 소박한 모임의 학습을 지원하며 함께 배우고 익히고 성찰하는 일, 배우고 익힌 것을 책으로 쓰는 일, 현장에서 필요한 연구과제를 하는 일을 한다.

지은 책으로 《마을에서 함께 읽는 지역관리기업 이야기》 《깊은 협동을 위한 작은 안내서》 《한국 사회적경제의 역사》(공저) 《의료복지 2026 주치의가 답이다》(공저) 《프랑스의 실업자 운동》 등이 있다. 《지역관리기업, 사회관계를 엮다》 《다른 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을 공동으로 번역했고, 《다른경제》를 편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