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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로 듣는 협동조합의 역사 ① ]

협동조합의 가장 오래된 조상은?


역사 사전에 따르면 협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기업활동을 시작한 것은 17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나는 영국의 런던의 ‘화재보험공제회(mutual fire insurance society)’이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의 프랑쉬-꽁떼(Franche-comté)에서 설립된 치즈생산자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의 가장 오래된 조상에 대한 정보는 역사 사전에 달랑 다섯 줄로만 기록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나의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왜 협동조합의 조상에 공제회 이름이 올라가 있지? 그 공제회는 협동조합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 무슨 일이 있었기에 런던에서 처음 만들었을까? 프랑쉬꽁테의 치즈생산자협동조합에 대해서는 별 의문이 없었다. 왜냐하면 꽁떼 치즈는 프랑스에서 아주 유명한 치즈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상주곶감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런던 대화재로 삶의 터전을 잃고 난 후의 대비책, 공제회

 

그래서 런던의 화재보험공제회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아주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선 역사 사전에 기록된 연대기와는 달리 런던에서 설립된 공제회는 1750년이 아니라 1696년이며, 그 이름은 88올림픽 때 그 유명한 노래 제목과 같은 ‘손에손잡고(Hand in Hand)’였다. ‘손에손잡고’는 화재생명보험회사(Fire & Life Insurance Society)였는데 설립된 배경에는 1666년에 발생한 그 유명한 런던대화재가 있었다.

 


1666년 9월 4일 화요일 저녁에 세인트캐서린 부두를 배경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무명 화가의 작품이다. 

왼쪽에는 런던 교가 있으며, 오른쪽에는 런던탑이 불타고 있는 모습이다. 
이전의 세인트폴 대성당은 작품의 배경과는 먼 곳에 있었기 때문에 묘사되지는 않았다. [출처: 영문 위키피디아, Great Fire of London]

 

화재는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닷새간 계속되며 귀족과 평민 할 것 없이 런던 시내를 휩쓸어 많은 가옥과 성당 등을 불태웠다.

손에손잡고는 이 화재가 일으킨 경각심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30년이라는 시차가 있는 것이 다소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추측컨대 화재 복구에 많은 시간이 걸렸고, 또 공제회를 준비하고 조직하는 데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기에 그러했으리라 짐작된다.

하여튼 도시 인구 8만 명 중 7만 명의 가옥이 불탔으니 사람들은 어렵게 일군 삶의 터전이 한순간에 재로 변하는 것을 보며 커다란 충격을 받았을 것이며, 그러하니 먹고사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위험에 대비하는 일 또한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출처: 영문 위키피디아, Hand in Hand Fire & Life Insurance Society

손에손잡고 화재생명보험회사의 화재보험 마크

 

1666년이면 아직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이지만 런던이라는 도시는 이미 많은 인구가 밀집한 도시로 성장하던 중이었기에 화재가 발생하면 연이어 피해가 번지는 형국이었다. 오늘날 코로나19가 대도시에서 더욱 많은 감염자를 발생시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대륙을 건너 미국에서 재기에 성공한 공제회

 

손에손잡고는 런던 대화재 이후 설립된 보험회사 세 곳 중 하나로 1696년에 설립되어 1905년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사라졌으니 최장수 공제회가 아닐까 한다.

그런데 이 공제회의 역사는 미국까지 퍼졌다. 당시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주민들이 1736년에 남캐롤라이나 주의 찰스턴에서 ‘찰스턴 우애조합(Friendly Society of Charleston)’이라는 이름으로 설립한 것이다. 그런데 1740년에 그만 큰 화재가 발생해 찰스턴 우애조합은 너무 큰 소실을 입어 문을 닫게 되었다.

찰스턴에서는 짧은 생을 마감하고 끝이 났지만 실제 미국에서 공제조합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벤자민 프랭클린 덕분이다. 그는 평소 화재 예방에 관심이 많았는데 1736년에 자원봉사자들로만 구성된 결사체(association)인 ‘화재대책연맹(Union Fire Company)’을 만들었다. 그런데 프랭클린은 얼마 안 가서 단순히 자원봉사자들로만 구성했을 때 화재로 인한 손실을 보존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영국을 방문했을 때 알게 된 손에손잡고의 경험을 따라 화재와 싸우는 조직이 아니라 화재로 인한 죽음과 재산 피해 등을 대비하는 보험을 설계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1752년에 친구들과 함께 화재로 인한 주택손실보험 회사를 설립했다. 회사명은 손에손잡고 조직의 본명인 우애조합(Amicable Contributionship)을 따라 ‘필라델피아 화재주택손실보험공제회(Philadelphia Contributionship for the Insurance of Houses from Loss by Fire)’라는 이름으로 지었다. 이 공제회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아직도 영업 중이다.

 

                           

                               출처: 위키피디아ⓒBeyond My Ken

벤자민 프랭클린이 1752년에 세운 필라델피아 화재주택손실보험공제회 사무실(왼쪽)과 공제회 문장(오른쪽)

 

공제회가 협동조합의 조상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왜 협동조합운동의 역사에 공제회가 있을까?

우선 17~18세기 당시, 그러니까 협동조합이나 공제조합과 같은 사회적경제 조직이 태동할 시기에는 현재와 같은 뚜렷한 구분이 없이 ‘노동결사체’로서 공통의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즉, 둘 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후 노동자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위험이나 재해에 대비하기 위한 자구책으로서의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나라에서 협동조합보다는 공제조합이 제도적인 인정을 먼저 받았다. 그중 가장 초기의 인정을 받았던 것 중 하나인 프랑스의 ‘상호구호회’는 1806년인데, 이때의 정의를 보면 공제조합의 조직 운영의 관점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상호구호회는 일종의 가족과 같은 결속력을 통하여, 같은 계층의 개인들이 질병과 노령에 대비하여 자원을 상호부조하는 진정 우애의 회이다”(Gueslin, p.145).

 

이 정의를 보면 알 수 있듯 상호구호회나 공제회 등의 공제조합은 그 조직에 참여하는 이들은 서로 남이지만 가족과 같은 결속력을 가진다. 이렇듯 공제조합은 구성원들 간의 끈끈하지만 평등한 관계를 토대로 하며, 미래에 닥칠 어려움에 대비하며 예방하는 자구적인 안전망이라고 볼 수 있다.


    글 : 김신양

한국사회적경제연구회에서 회장을 맡아 먹거리, 서로돌봄, 생태적 에너지, 주민 참여를 통한 지역개발 등과 관련한 실천 활동을 지원하고, 정책을 만들기 위해 돈 안 되는 활동을 하고 있다. 3년간 ‘다른경제 학습동아리’를 운영했고, 최근에는 주로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나 생활협동조합 또는 지역의 소박한 모임의 학습을 지원하며 함께 배우고 익히고 성찰하는 일, 배우고 익힌 것을 책으로 쓰는 일, 현장에서 필요한 연구과제를 하는 일을 한다.

지은 책으로 《마을에서 함께 읽는 지역관리기업 이야기》 《깊은 협동을 위한 작은 안내서》 《한국 사회적경제의 역사》(공저) 《의료복지 2026 주치의가 답이다》(공저) 《프랑스의 실업자 운동》 등이 있다. 《지역관리기업, 사회관계를 엮다》 《다른 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을 공동으로 번역했고, 《다른경제》를 편역했다.